“왜 하필 이 나라에서, 그것도 이 시대에 내가 태어났을까하고 매일 생각해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보는 포털 뉴스에는 항상 지금 20대의 스펙과 관련된 문제, 비관 자살, 취업난에 대한 기사가 메인에 2~3개씩은 나오고 있다. 10년이 채 안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지금 20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과거 8~90년대만 하더라도 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취업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튜던트 푸어라고 불리는 지금 20대들의 모습은 우리 때와 그 정도가 심각하게 다르다고 한다. 아직 졸업도 못했는데 벌써 학자금 빚이 12조원이 있고 20대 사회 진출 대기자 중 11%인 34만 명이 빈곤 인구이다. 문제는 과거 취업만이 유일한 빚 청산의 기회였던 시대와 달리, 지금 20대는 빚 청산은 고사하고 취업조차 전쟁터에서 이겨야만 쟁취할 수 있는 오르기 힘든 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힘든 20대는 결국 서점을 찾았다. 사람이 힘들면 기댈 곳을 찾듯이 2010년 이후 자기계발서 시장에서 취업과 20대를 대상으로 한 서적의 출간이 큰 폭으로 상승하였다.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알아봐주길 원하던 혹은 왜 아파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던 20대에게 때마침 등장한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그 이후의 힐링 서적들이 큰 붐을 일으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기계발서라는 분야는 20대에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 20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일 잘 이해한다고 말하는 자기계발서의 시장이 오히려 제대로된 20대의 삶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와 생각만으로 20대들의 시간과 돈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해진다.

 

Part1. 취업준비생이라는 계급과 스펙이라는 재산

지금 20대에게 ‘취준’(취업 준비)이란 청춘을 대신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제 ‘스펙’이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20대의 스펙 전쟁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다.
날로 좁아져가는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역량이라 불리우는 것들을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서 청춘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취준생이라는 계급안에서 평범한 서민이 되려면 학점,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기본 7종 정도 있어야한다. 잔디밭 위에서 낭만을 즐기던 캠퍼스 라이프는 잊혀진지 오래고 대학교 입학과 함께 신입생들은 도서관 자리를 맡는다.

문제는 취준생을 지원해 줄 든든한 자금줄 없이 기본 스펙 7종(학점,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수상경력) 완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필요한지 어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대기업 취업 합격 스펙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 한지 직접 계산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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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재학기간 등록금 비용 8천 100만원(졸업 기간 5년 10개월 + 졸업유예 1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 30% 이상이 취업 준비를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직업 능력개발원 ‘4년제 대졸자의 졸업유예 실태와 노동시장 성과’, 2014) 이로 인해 대학생들의 평균 재학 기간은 약 5년 10개월로 일반적인 8학기를 채우고 나서 4학기 정도를 더 학교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을 생각하면 12학기 총 8000만원의 등록름을 납부하게 된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졸업 유예신청을 하게 되면 등록금을 내지 않는 대신 1학점 당 약 10만원, 한 학기 유예 시 평균 50만원 정도를 내게 된다.

2) 토익 등 어학점수 비용 9개월 360만원(토익 시험 비용 + 토익 스피킹 + 어학 준비 비용)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어학 점수를 만들기 위해서 높은 응시료와 학원 수강료가 문제다. 토익의 경우 1회 응시료는 4만 2천 9백원, 토익 스피킹은 7만 7천원, 오픽(OPIC)은 7만 8천 1백원 등으로 1번씩 만 봐도 20만원 가까이 쓰는 셈이다. 그 외 학원 수강료, 교재 등으로 매달 33만원을 추가적으로 지급하며 9개월 정보 준비한다고 하면 약 4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3) 어학연수 4048만원, 자격증 225만원.. 1억이 훌쩍 넘어간다.

기본적인 스펙 이외에 남들과 구별될 스펙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면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등 까지 해야 하고 대학 등록금을 포함하여 총 1억 2천 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등록금을 제외하더라도 2천 만원 정도의 비용이 취업 준비에 쓰인다는 것이다. 부모의 지원 없이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만으로 이를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취업이 안되는 것도 서러운데, 다 커서 돈까지 타 써야 하는 취준생들은 부모님께 그냥 죄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 다 갖춘 기본 스펙 만들기를 위해 시작한 스펙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늘도 다 갖추지 못한 스펙을 마저 채우기 위해 청년들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Part2. 20대의 눈물

우리는 자기계발서 속 꿈 같은 동화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취준생의 진실된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취업 커뮤니티는 취업 관련 수기, 취업, 면접 정보 등 대기업, 정규직으로 가는 길 저마다의 노하우들 공유하는 공간이다. 포털 취업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어떤 게시글들이 올라오는지 분석했다.

하루 3000개 이상의 글과 1000명 이상의 신규 회원이 등록될 만큼 엄청난 정보가 만들어지는 취업 커뮤니티에서 취준생이 올리는 게시글안에 담겨있는 스트레스는 엄청 났다.
빈번한 낙방과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정쩡한 주변인의 신분은 자기 비관으로 이어지기 일쑤였고 정보에 대한 공유를 넘어 처지를 비관하고 가족에게 못하는 절망의 소리를 내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취준생들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표면화하여 측정해보기 위해 취업 커뮤니티 게시글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ㅠㅠ’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ㅠㅠ’라는 키워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취준생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진단 할 수 있었다.


‘ㅠㅠ’ 키워드가 언급된 게시물의 기간별 빈도수를 살펴 보았다. 2009년 1만 4천 건에 불과하던 ‘ㅠㅠ’ 언급량은 2010년 2만 7천 여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2014년 11월 당시 5만 6천 건의 게시글이 올라온 것으로 확인 되었다. 또한 공채 모집이 많은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야기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2009~2014년 상반기에 ‘ㅠㅠ’가 언급된 수는 7만 8천 163건, 하반기에는 13만 1290여 건으로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에 2배 가량 더 많이 언급되었다.

취준생의 눈물(ㅠㅠ) 나는 상황은 해를 거듭할 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을 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취준생을 울게 만드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앞서 수집한 게시물 중 ‘ㅠㅠ’ 키워드와 동시에 쓰인 연관 키워드(총 1만 1165건)을 분석 하였다.

그리고 이 중 40%가 넘는 4475건이 ‘스펙’과 관련된 키워드임을 확인했다. 그 중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토익, 토익 스피킹 등으로 어학점수와 관련된 키워드가 31%였고 그 다음으로 자격증 22%, 대외활동(봉사활동, 공모전 등) 14%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 밖에도 인턴, 학점과 같은 키워드나 인적성, 시사 공부와 같은 채용 전형 관련 키워드도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키워드들은 앞서 언급한 기본 스펙 7종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스펙이라는 재산을 쌓는 일은 취준생들을 울음 짓게(ㅠㅠ)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부분을 데이터로 볼 수 있었다.
스펙을 쌓아 겨우 서류를 통과한다해도 곧 인적성이 발목을 잡는다. 그 다음에는 1차, 2차, 임원 면접까지 내딛는 걸음마다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니 ‘내 사원증’을 위한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다와 같다.
영어로 ‘기계 등의 사양’을 뜻하는 스펙(spec)이 대한민국에서는 취준생이라는 계급이 가져야 하는 기본 사양으로 전도되어버렸다. 기계처럼 사용자가 원하는 기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지는 삶, 그게 어쩌면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편입에 워홀에 뭐 준비, 뭐 준비 한다고 시간은 훌쩍 가고 이제 30살이 다 되어가는데… 취준(취업 준비)은 거의 2년이 되어가고… 앞으로가 너무 막막해요. 너무 서럽습니다.”

취업 커뮤니티 고민 게시판에는 온통 ‘떨어지다, 힘들다, 모르겠다, 고민이다, 포기, 싫다, 우울, 최악, 버티다, 죄송하다’ 같은 우울한 어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이들에게 ‘인생’, ‘꿈’에 대한 이야기는 취업 합격자나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취업보다 꿈에 대해 논하던 20대는 지금 ‘인생’, ‘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손 안에 사원증이 쥐어지기 전에는 바라지도 바랄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하는 뻔한 취준생의 삶이 아닌, 그들의 처절한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펙을 만들기 위한 취준생의 삶과 같다는 ‘스터디’에 대해 분석해보기로 했다. 2014년 취준생들의 스터디 실태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하루를 가장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취준생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